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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 발전의 토대 - 왕립지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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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 No.1 2019. 7. 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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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립지리학회는 지리학의 발전을 위해 1830년에 설립된 영국의 학회이다. 지리학을 알아보면서 이 지리학의 연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원천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매우 커져갔다. 그러다 우연히 왕립지리학회라는 것이 있었음을 알게되어 이렇게 포스팅 해보는 것이다. 

 오늘날은 세계 지리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학회이며, 연구, 교육, 현장조사와 탐사를 지원하여 세계의 사람, 장소, 환경에 대한 일반 법칙화와 상세한 이해를 돕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매우 기본적인 것들이라 생각되면서도 이런 중심축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체계화 되어있지도 않았을 것 같다.

 왕립지리학회는 1830년에 설립된 런던지리학회의 명칭으로 지리학의 발전을 추진하는 연구기관으로 발족되었으며, 세계에서 세번째로 발족한 지리학회이다. 이후 로터리 클럽과 팔레스타인 협회와 비슷한 조직으로 조지프 뱅크스가 1788년에 설립한 옛 아프리카 협회를 흡수했다. 많은 학회와 마찬가지로 선택된 회원들끼리 최근의 과학적인 문제나 발상에 대해 논의하는 비공식 만찬을 개최하였던 식당클럽으로 시작된 것이다. 

 창립멤버는 존바로우경, 존 프랭클린, 프랜시스 보퍼트 등이 있다. 여기서 프랜시스 보퍼트경은 수로학자이면서도 영국 해군 제독이라 지리뿐 아니라 수로학자로도 유명세를 떨쳤던 인물이다. 윌리엄 4세로부터 후원을 얻게 된 후로부터 점차 왕립지리학회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1859년에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공인장을 받았다. 

 1830년부터 1840년에 걸쳐, 왕립지리학회는 런던의 리젠트 스트리트에 있는 왕립원예협회와 방을 공유하고 화이트홀 플레이스 15번지에 본부를 두었다. 이후 새빌로우 1번지로 이전하였고, 이 주소는 곧바로 모험과 여행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만큼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인 것이다. 

왕립지리학회의 본부 (사진출저 : 위키백과)

  전 인도 총독을 역임한 커즌 후작을 회장으로 선출한 1911년에 학회는 새로운 추진력을 얻었다. 샤빌 로우의 건물이 매물로 나와 현재 학회의 본부 소재지인 로우더 롯지를 10만 파운드에 구입했다. 로우더 롯지의 사용은 1913년 4월에 시작되었다. 같은 해 학회에서는 여성의 입회를 인정하게 되었다. 로우더 롯지는 1874년에 리차드 노만 쇼가 윌리엄 로우더를 위해 지은 것으로 쇼가 활약한 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영국 내의 건축물이었다. 

 왕립지리학회의 역사 초기에는 식민지 탐험, 특히 아프리카, 인도대륙, 북극, 중앙아시아 탐허모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찰스다윈, 데이비드 리빙스턴, 헨리모턴 스탠리 등 많은 탐험가, 여행가를 지원했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왕립지리학회가 지원한 탐사는 수시로 톱뉴스로 다루어졌으며, 학회의 회장과 협의회는 기자나 편집자들로부터 열렬한 취재를 받았다. 이것은 역사적 시기와도 맞물리는 것 같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새로운 땅 미개척지에대한 관심도가 엄청 높았으니 말이다. 여러곳의 탐구로인해 수집된 자료는 왕립지리확회에 보내져 현재의 독특한 지리학 컬렉션을 형성하고 있다. 처음엔 학회논문집으로 시작한 이것은 현재까지 발간되고 있는 더 지오그래피컬저널로 대체되었다. 학회는 영국대학에서 교육, 연구 대상으로서 지리학을 확립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옥스퍼드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두 대닥 지리학부 설립에 자금을 제공했다고하니 이때의 영향력은 엄청난 것으로 느껴진다.

 오늘날 왕립지리학회는 영국뿐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지리학분야의 주요 학회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유럽 최대의 지리학계 학회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큰 지리학계 학회 중 하나가 되었다. 영국 냉에 8개, 홍콩에 1개의 지부가 있으며, 지역 학회도 운영하고 있다.

 지리학 연구와 교육, 현장 조사 ,탐사, 지리에 일반 이해, 인기 향상, 지리 정보 수집에 대해 다방면으로 지원과 홍보를 하고 있다. 지리학협회와 왕립 스코틀랜드 지리학회 등이 지리학계 학회와 협력하기도 했다.

  이번편에는 지리학 의회가 어떻게 생겨나서 만들어 졌는지 지리학역사를 어느정도 살펴본 것 같다. 전혀 상관없고 알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보다는 이렇게 원초적인부분을 알고나니 큰 뼈대가 생기고 어느정도 역사 흐름에 대해서도 깊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같다. 조금은 지리학에 더 다가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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