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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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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 No.1 2019. 5. 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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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질에 관심이 생기면서 가장 기본적인 지리학을 알아보게 되었다. 지리학은 지표상에서 일어나는 자연 및 인문현상을 지역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이다. 공간 및 자연과 경제, 사회와의 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분야로, 공간이나 자연환경이라고 하는 물리적 존재를 대상 안에 포함하는 점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양면의 성격이 있다. 원래는 농경이나 전쟁, 통치를 위해 각지의 정보를 조사해 정리하기 위한 연구 영역으로서 성립했다. 그러나 현재는 자연과학 내지 사회과학의 한 분야로서 지역마다 다른 공간적 이질성을 설명하는데 필요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지않는 지리학이 학문분야로서 변화게 되었는지가 정말 흥미롭게 다가왔다. 

 지리학의 관심 대상은 불규칙한 분포이다. 지구에서 발견되는 사물에는 다중성이 존재하는데 사물의 다중성은 공강적으로 불규칙하게 분포한다. 불규칙한 분포가 사물이 지리적인 성격을 나타내게 한다. 다른 관심 대상은 상호관련성이다. 예를 들어, 농업현상의 경우 농업과 연관된 기후, 토양, 인구, 경제적 조건, 기술력과 다른 조건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해당 농업의 지리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없다. 이를 바탕으로 미루어 볼 때, 지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왜, 그곳에, 무엇이 있으며, 그래서 그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다. 영어에서 지리를 뜻하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땅과 기술을 뜻하는 용어를 합친것이다. 지리라는 용어는 주역에서는 산천의 환경과 형세를 나타내는 말이었고, 구당서, 원사에서는 오늘날의 지리학과 유사한 용어로 쓰였다. 

출저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B%A6%AC%ED%95%99

 지리학에서 역사는 떼어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같다. 일단 서양과 동양의 지리학을 각각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양의 지리학]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세계지도는 기원전 9세기 고대 바빌론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후대 그리스 작가들이 지리학의 진정한 창시자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후대 학자들의 인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초로 예술과 과학의 방식으로 지리학을 바라 보았던 그리스인들은 지도학, 철학, 문학, 수학을 통해 지리학을 탐구했다. 지리학이라고하면 한쪽 분야만 파면 되는 줄 알았지만 정말 다양학 학문으로 통해 지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했다는것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파르메니데스나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노래가사에서도 나오기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식을 설명하면서 지구의 윤곽이 둥글다는 것을 보였다. 하지만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지구는 편평한 원반이라고 믿었다. 바다멀리 수평선이후로는 아무것도 없고 낭떨어지라고 믿었다고하니 옛날에는 충분히 그러한 상상이 맞다고 수긍되기도 한다. 

 중세시대에는 로마제국의 붕괴에 의해 유럽보다는 이슬람 세계에서 지리학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무함마드 알 이드리시와 같은 무슬림 지리학자는 상세한 세계지도를 제작하였다. 

 16~17세기 동안 지속된 유럽의 대항해시대에는 많은 신대륙이 발견되었다. 이때 그 유명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 마르코 폴로, 제임스 쿡 같은 탐험가의 발견이 이어졌다. 이들의 발견에 따라 유럽에서는 정확한 지리적 사실을 아는 것과 지리학적 기반이 필요해졌다. 경도를 찾는 문제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존 해리슨은 크로노미터를 고안하여 경도 문제를 해결 했다. 

 18세기와 19세기ㅣ는 지리학이 분리된 학문의 분과로서 인식되었던 시대였고, 유럽의 대표적인 대학의 교과과정의 부분이 된 시대였다. 많은 지리학회의 발전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1821년의 프랑스 지리학회 1830년의 왕립지리학회, 1851년의 미국 지리학회, 1888년의 내셔널지오그래픽 학회가 이 당시에 창설 되었다. 임마누엘 칸트, 알렌산더 폰 홈볼트, 칼리터, 폴비달드라 블라슈는 지리학이 철학에서 학문상의 과목으로 인식되게 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속해있는 동양쪽도 바라보면 좋을것 같다.

 

[동양의 지리학]

 3세기 이후로 지리학적 연구와 지리학적 문헌 집필에 대한 중국의 이론은 13세기까지 동시대의 유럽에 비해 훨씬 정교했다. 유안, 배수, 가탐, 심괄, 범성대, 주달관, 서하객과 같은 중국 지리학자는 중요한 문헌을 남겼다. 사실 서향의 학자들에 비해 이름이 낯설긴하다. 17세기에는 서양식 지리학적 이론이 중국에서 채용되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B%A6%AC%ED%95%99

 

한국에서 삼국시대나 그 이전의 지리학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토대로 당시의 지리관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신라말기에 선종 승려들이 중국에서 풍수지리설을 들여왔다. 고려시대에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지리지처럼 지리에 대한 문헌이 남아있다. 이 시대에는 풍수지리설이 유행한 시기였다. 서경 천도와 북진정책의 추진 근거로 풍수지리가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지리지와 지도가 편찬 되었다. 이는 중앙 집권과 국방의 강화를 위한 것이였다. 태종 때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동양의 세계 지도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16세기도 많은 지도가 만들어졌는데, 조선방역지도가 현존하고 있다. 세종, 성종 때에는 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여기에는 군현의 연혁, 지세, 인물, 풍속, 산물, 교통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있다. 이 당시에는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중종 때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보충하여 편찬했다.

 실학이 발달하면서, 민족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한국의 전통지리도 이에 따라 발달했다.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와 같은 역사 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와 같은 인문 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이중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조선 후기 학자인 이중환의 인문 지리서 택리지 인것같다. 사람과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중시한 것을 설파하고 참으로 대단한 학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서양식 지도가 전해짐에 따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같은 정밀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지리학이 도입되었다.

 

마지막으로 현대에와서 현대의 지리학은 지난 2세기 동안 컴퓨터의 발전은 지리정보학이 발전하게 하였다. 참여자의 관찰과 지리 통계학은 지리학의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20세기 서구에서는 지리학은 주요 네가지 과정을 거쳤다. 환경결정론, 지역지리학, 계량혁명, 비판적 지리학이다. 지질학, 식물학, 경제학, 인구학과 같은 학문과 연계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세계를 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지구 시스템 과학의 연구로도 연계가 늘어났다. 

 

이러한 지리학은 서구에서 유래했다고 보면 된다. 현대 지리학의 기초는 서구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리학자는 지도학자, 지명이나 수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여겼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많은 지리학자가 지명을 다루는 학문이나 지도학을 아는 사람이었어도 이 분야는 지리학자의 주된 연구 분야가 아니다. 지리학자는 현상, 과정, 사물의 시공간적 분포를 다룬다. 여기에 인간과 그들이 사는 환경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연구한다. 공간과 장소는 다양한 주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리학은 다른 학문과의 연관성이 크다. 앞으로 지리학과 관련된 학문의 무궁무진함에 기대가 커지는 부분이다. 지리학적 접근의 이러한 특성은 현상과 그것의 공간적 패탄 사이의 상관관계를 얼마나 깊게 따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지리학을 여러분류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이것들은 다음에 또 더 공부해서 포스팅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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