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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지도 - 대동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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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민국 No.1 2019. 5. 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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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지리학을 알아보는 와중에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최초의? 정밀한 지도인 대동여지도에 조금은 더 깊게 알고싶어졌다. 예전 역사시간이나 지리시간에 항상 빠짐없이 나오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많이 들어 알고있지만 제대로 대동여지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대동여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1861년 제작한 한반도의 지도이며, 지도첩이다. 3건이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 되었으며, 2008년에는 대동여지도 목판이 대한민국 보물 제 1581호로 지정되었다. 근대적 측량이 이루어지기 전 제작된 한반도의 지도 중 가장 정확한 지도라고 한다. 청구도의 자매편으로 내용의 첨삭이 이루어졌다.  잠깐 언급하고 가자면 청구도라는것은 김정도가 만든 지도인데 옛 지도 중 일정한 크기의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고 축척이 동일하다고 한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A%B5%AC%EB%8F%84

대동여지도의 지도 구성을 살펴보면 동여도와 마찬가지로 가로 80리, 세로 120리를 한개의 방안으로 하여 한 개 면으로 하고, 2개 면은 한개 도엽인 목판 한 장에 수용하였다. 그러므로 대동여지도는 전체지도 도엽은 목판 121매이고, 제책하였을 때의 면수는 213면이다. 그러나 여기에 부록 격인 지도유설, 도성도, 경조오부도 등이 첨가되었기 때문에 실제 도엽은 126목판이고 전체 면수는 227면이다. 전체 크기는 가로 19판, 세로 22층(22첩이라고 표시하기도 한다) 이며,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가로 360센치, 세로 685센치이다. 이는 지도 대량 보급을 염두에 둔 제작 기법으로, 동서 19판을 연폭으로 남북 22첩을 계속 인접하면 한반도 전체의 지도가 되게끔 하였다. 

 한편 한양이, 청구도에서는 두면에 걸쳐있었는데, 대동여지도에서는 한 면의 중앙부위에 위치하여 한양을 둘러싼 경계가 모두 수용되었다. 이는 당시의 수도권의 지역적 범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정말 섬세하게 작업하고 심혈을 기울인 지도만들기 였던것이다. 최근의 기술처럼 편하게 측정하는것이 아닌데 어찌 이리 했는지 대단할 정도이다. 

 또한 대동여지도에서는 각 층의 도엽을 동에서 서로 연폭으로 길게 잇고 이것을 병풍식으로 접어 모두 22층으로 하는 분첩절루 또는 분첩절첩의 방법으로 제작하여 지도첩이 되게 하였다. 이때 책의 크기는 가로 20센치, 세로 30센치로서 당시 서지류의 크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책처럼 보관할 수 있다. 이는 지도의 제작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참고아였으며, 위도 측정에 다소 오차는 있으나 서양 지도학의 영향을 직접 받지 않고 한국의 전통적인 지도학을 대성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지도라 불릴만한데다 그 섬세함까지도 대단하다 말할 수 있다고 느낀다.

출처 ttps://ko.wikipedia.org/wiki/대동여지도

 

 김정호가 제작한 세 지도, 곧 대동여지도와 청구도, 동여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고 한다.

1.청구도가 필사본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오류를 막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했다.

2.지도표(지도식)을 사용하여 지도의 주기 내용을 간결화하고 옛 지도를 근대화 했다.

3.분합이 자유롭게 22첩으로 만들어 상하를 잇대면 도별 지도도 되고 전부 연결하면 전국도가 되도록 제작하여 이용하기 편리하며, 접으면 책 크기로 되어  휴대하기 편하도록 제작하였다.

4.전통적인 지도 제작법인 배수의 6체에 따랐으며, 방안도법을 이용하였고, 확대와 축소를 할 때 서양의 과학기술을 가미하여 지도의 정확성을 높였다.

5.주기 내용이 많아 정보가 풍부하다.

6.10리마다 점을 찍어 여행할 때 이정을 알기 쉽게 하였다.

7.등고선이 없지만 대략적인 해발고도를 알 수있다.

8.배가 뜰수 없는 하천은 표시하지 않는 등 군사적, 상업적으로 유용한 지도였다.

이렇게 대동여지도의 특징을 살펴보니 김정호가 대단하다 느껴진다. 아무래도 정말 많은 연구와 어떻게하면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하면서 편리하게 할 수 있을지 연구의 연구를 거듭한거 같다.

 

 멸실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던 대동여지도의 목판이 1995년 국립중앙 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었다. 이 목판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목판과 함께 제작된 것으로 11매로 가로 43cm, 세로 32cm의 목판에는 양면에 표제 및 24도엽 가운데 5분의 1에 해당한다. 목판의 재질은 피나무이며, 목판에는 교정된 흔적이 있는데 1861년(철종12) 초간본 완성 이후 여러 차례 오류를 시정하였다. 목판은 1864년 인쇄되었던 고종원년 갑자본의 원형으로 판단된다. 숭실대학교에서 가지고 있는 판목 함경도 함흥지방의 것으로 성불사, 철산, 삼장산이 판각되어 있다.

 

 1898년 일본 육군이 경부선을 부설할 목적으로 조선의 지리를 몰래 측량하기 위해 일본인 측량기술자 1200명과 조선인 2~3백 명을 비밀리에 고용하여 전국을 측량하여 5만분의 1지도를 3백 부 만들었다. 그 뒤 대동여지도의 존개를 알게 된 그들은 그 지도가 자신들이 힘들여 제작한 지도와 별 차이가 없음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이것만 보아도 김정호 혼자 이룩한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되는거같아 존경스러워 졌다.

 

 추가로 현존하는 옛날의 지도중 가장 큰것으로 알려진 청구도에대해 더 깊게 알아보자면 이후 제작된 대동여지도의 기초가 된 채색필사본이다. 상하 2책이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김정호가 제작한 첫 번재 지도여서 의미가 더 깊은것 같다. 두책으로 되어있는 청구도는 앞머리에 최한기가 쓴 제문 다음에 김정호가 쓴 범례가 있고, 1면 크기의 역사 지도인 동방제국도, 사군삼한도, 삼국전도, 본조팔도성경합도와 4면 크기의 신라, 고려, 조선 지도는 행정구역 및 짐명의 시대적 변천을 개관할 수 있고, 청구도의 각 지방 지도를 찾기 위한 색인 역활을 하고 있다. 이밖에 부록으로 국군총목표라는 제목의 당시 행정구획별 남녀인구수, 군보, 곡부, 방면, 전답, 민호 등이 기재된 표가 있다. 또한 지도 내용에는 수계, 지형, 성곽, 창고, 역도, 봉수, 교량, 고개, 섬, 호구, 시장, 군병, 토산, 공납 등 그 지역의 특색을 나타내는 지지사항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의 세심한 디테일에 놀라웠고, 지역의 특색까지도 살려내니 지도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연구대상 집합체라고 생각이 든다. 

출저 https://ko.wikipedia.org/wiki/%EC%B2%AD%EA%B5%AC%EB%8F%84

청구도에는 색인도 역활을 하는 본조팔도주현도총목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지도를 찾아가는 방법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경위선표에는 방안의 가로, 세로에 일련번호가 붙어 있으며, 각 지도의 방안에 써있는 가로 세로의 일련번호를 비교하여 지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색인도, 지지 정보의 결합, 지도식 범례를 갖추고, 또한 지도 구성에서의 모눈 획정이나 방위 산출, 극고에 따른 지도의 보정 등은 당시 청구도가 조선에서 가장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잘 활용한 지도였음을 알 수 있다. 청구도는 당시의 어떤 지도보다 뛰어났지만 옛 지도에서 가지는 단점도 있다. 지도의 도식 곧 지도식을 전통적인 방식을 채택했고, 방위를 12방위를 씀으로써 지도 자체는 정확하지만 지도의 지점 표현이 보다 불분명하게 되었다. 수계는 정확히 표시한 반면 산맥은 진산 중심으로 표현함으로 산맥이 많은 동쪽이 실제보다 넓게 그려졌다. 그래도 당시의 제작기술로 따지면 천재적이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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